영국의 지배를 받던 인도제국에 한 물리학자가 있었다. 그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광자 가설과 막스 플랑크가 추측에 의해 얻어낸 플랑크 복사 공식을 증명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통계적으로 독립된 입자 대신 낱칸에 입자를 넣고 통계적으로 독립된 위상 공간 상의 낱칸들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생각을 정립하여 <왕립 학회 철학 저널>에 논문을 제출했으나 출판을 거절당했다. 그는 굴하지 않고 아인슈타인에게 논문을 보냈고, 아인슈타인은 그의 진가를 알아봤다. 그렇게 아인슈타인의 도움으로 그의 논문은 독일의 유명 저널인 '차이트슈리프트 퓌어 퓌지크'에 출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바로 오늘날 '보스-아인슈타인 통계'라 불리는 이론을 정립한 '사티엔드라 나트 보스'이다. 보스-아인슈타인 통계는 플랑크 법칙을 설명하는 것을 시작으로, 오늘날까지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이론이다. 특히나 현대 물리학의 꽃인 양자역학의 원리에 따라 작동하는 미래형 첨단 컴퓨터인 양자컴퓨터 분야에 대한 연구도 계속되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인도에 있는 무명 과학자의 논문을 인정하고, 함께 정리하였을 뿐만 아니라, 박사학위가 없는 보스를 디카 대학교(방글라데시에서 가장 오래된 국립 대학교)의 정교수이자 물리학과 과장이 될 수 있게 그를 추천하였다.
보스가 처음으로 편지를 보냈던 1924년의 아인슈타인은 이미 세계적인 물리학자였다. (아인슈타인은 1921년 광전효과에 관한 기여로 인하여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배우는 데 있어서 차려야 할 격식이 없었으며,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의 명성과 학벌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은 연이 닿은 모든 사람에게서 배울 점을 찾았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다. 내가 그들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아인슈타인 또한 보스처럼 무명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 아인슈타인은 권위에 대해서 무례하게 구는 태도 때문에 무명에서 벗어나기 더욱 어려웠다. 그런 성격에 더하여 '지위'조차 없던 아인슈타인에게는 보편적 이론을 창조하는 작업과 그것을 세상에 알리고 친구들과 적들에게 그 이론의 중요성을 설득하는 모든 과정이 전쟁이었다.
지위가 없는데 권한을 행사하려는 사람들은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타인의 존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까다롭고 억지를 부리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지위가 없는데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사람을 보면, 사람들은 그 사람이 자신의 존중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저항한다.
-애덤 그랜트 <오리지널스>
"아인슈타인.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천재'가 연상되는 위대한 과학자이지만 상대성 이론이 증명되기 전까지 그는 무명의 독일 과학자였다."
아인슈타인은 1905년 한 해 동안 광양자설과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다. 그 해를 소위 아인슈타인의 '기적의 해'라고 부른다. 하지만 1905년의 아인슈타인은 그저 특허 사무소 직원이었다. 즉, 아인슈타인이 과학계에 1도 영향을 못 미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스에게 아인슈타인이 있었던 것처럼 아인슈타인에게도 조력자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막스 플랑크'와 '아서 에딩턴'은 아인슈타인의 이론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적극적으로 그의 이론을 증명하고, 널리 알리려 노력했다.
하지만 플랑크는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이론의 '절대적, 불변적 특성들' 즉 그 이론이 물리 법칙이 보편적이 되도록 하는 방식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 중략...)그리고 도대체 이 미지의 특허 사무소 직원이 누구인지 알아보라고 시켰다.
-매튜 스탠리 <아인슈타인의 전쟁>, P.65-66
“막스 플랑크가 말하면, 누구나 경청을 했다."
아인슈타인과 달리 그의 조력자는 이미 명성이 자자한 과학자였다. 플랑크는 상대성 이론을 다루는 논문을 처음 작성한 사람이며, 후에 그의 이론을 토대로 아인슈타인은 자신 고유의 양자 물리학을 계산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양자 물리학은 보스-아인슈타인 통계를 넘어 현대 물리학의 시초가 되었다. 이렇게 플랑크는 아인슈타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플랑크가 만약 아인슈타인을 못 알아봤다면? 특허 사무소 직원의 이론이라 읽지도 않고 무시했다면? 오늘날의 상대성 이론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막스 플랑크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기반을 다져주었다면, 그의 이론이 옳다는 것을 세상에 설득한 인물이 있다. 그가 바로 '아서 스탠리 에딩턴'이다. 에딩턴은 20세기에 활약한 영국의 천문학자이다. 그는 1912년 일식을 관측하는 임무를 맡았으나, 일식이 일어나기 전날부터 일주일 동안 폭우가 쏟아져 일식을 관측하지 못했고, 그는 ‘실망이 폭발했다.’ 하지만 일식을 위한 여정 덕에 아르헨티나 국립 천문대장에 임명된 국외 거주 미국인 찰스 딜런 페라인을 만날 수 있었고, 그를 통해 처음으로 아인슈타인의 이름을 들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즉, 1912년 일식 관측에 실패했지만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알게 되었고, 그에게 흥미를 느끼게 된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다고 보인다.
하지만 에딩턴과 아인슈타인에게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적인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 6월 28일 세르비아의 한 청년이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는 일명 '사라예보 사건'을 구실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하며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점차 민족 간의 싸움으로 번져 결국에는 거대한 두 세력의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한 세력은 독일계(독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제국 등의 동맹국)였고, 다른 세력은 영국을 중심으로 프랑스, 러시아 등이 뭉친 연합국이었다. 그렇게 에딩턴의 나라 영국과 아인슈타인의 나라 독일은 앙숙이 되었다.
영국이 독일에 선전 포고를 하기 전날 저녁, 외무부 장관 에드워드 그레이 경은 이렇게 썼다. "유럽 전역에서 불빛이 꺼지고 있다. 우리 생애에 다시 그것이 켜지는 일은 보지 못할 것이다."
독일에서는, 비교적 자신감이 넘쳤던 몰트케 장군조차 전쟁으로 인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거의 모든 유럽에서 문명이 파괴'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매튜 스탠리 <아인슈타인의 전쟁>, P.140
하지만 에딩턴에게 아인슈타인이 독일 물리학자라는 것과 영국과 독일이 앙숙지간이라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에딩턴은 국가를 뛰어넘어서 인류를 위하여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증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훗날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9년 5월 29일, 에딩턴은 백색왜성의 이상 고밀도에 대해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한 검증 실험을 지시하였고, 성공하게 되었다. 그날 에딩턴이 찍은 개기 일식 사진 중 하나가 1920년 그의 논문에 게재되었고 이는 명백히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라 빛이 휨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아인슈타인은 1921년 노벨상을 받았고,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천재'가 되었다.
올리버 로지는 에딩턴이 아니었으면 아인슈타인은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튜 스탠리 <아인슈타인의 전쟁>, P.522
인도의 무명 물리학자 보스에게 아인슈타인이 있었던 것처럼, 특허 사무소 직원인 아인슈타인에게는 플랑크와 에딩턴이 있었다. 조력자 역할을 했던 그들은 이미 세계에서 인정하는 최고의 자리에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무엇을 배우던지 간에 배움에 있어 쪽팔림이 없었다. 상대방의 지위, 출신 등 뒷배경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결과물에 집중할 뿐이었다.
그리고 조력자에게 도움을 받았던 무명 시절의 보스와 특허 사무소 직원 아인슈타인은 조력자에게 맞서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즉, 진정한 조력을 받기 위해서는 조력자에게 맞먹는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조력자도 그들을 그냥 돕지 않았다. 그들의 가능성과 적극적인 자세를 보았기에 협력했다.
한때 나는 온전히 인맥만을 바란 적이 있었다. 특히나 취업을 앞두고, 아는 사람이 인맥으로 좋은 회사에 들어갔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진정으로 부러웠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부러워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올바른 연결점을 잇기 위해서는 우선 적극적인 태도와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인성이 가장 먼저이다!) 그리고 영구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한 정론(定論)이 완전한 착각일 수도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맥락에 따라 유연하게 사고해야 한다. 인성, 태도, 그리고 실력을 갖추고 맥락적 사고를 한다면, 내 눈에 보이는 게 다르고, 내 귀에 들리는 게 다를 것이다. 특히 조력자라는 운이 나타났을 때,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 바른 인맥이 쌓일 것이다.
Reference.
1. 매튜 스탠리 <아인슈타인의 전쟁> 아인슈타인의 전쟁 - 교보문고 (kyobobook.co.kr)
2.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개정판) - 교보문고 (kyobobook.co.kr)
3. 애덤 그랜트 <오리지널스> 오리지널스 - 교보문고 (kyobobook.co.kr)
4. [MHN 과학] 보존과 거시세계의 양자역학, 2001 노벨 물리학상: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MHN 과학] 보존과 거시세계의 양자역학, 2001 노벨 물리학상: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 네이버 포스트 (naver.com)
5. 전건상 & 최무영 <보즈-아인슈타인 응집에 대한 통계역학적 조명> 특집(전건상) (archiv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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